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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목사] 둘다주의(dooldaism)
한누리 2008-01-31 18:26:55 134
둘다주의(dooldaism)
저에게는 손자 둘과 외손녀 하나가 있습니다. 육십이 넘어 얻은 손자와 손녀가 저에게는 신비로운 존재로 느껴집니다. 나를 할아버지가 되게 한 아이들, 나의 대가 확실하게 이어져 가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아이들 그리고 하나님의 한없고 놀라운 은혜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여 주는 새 생명의 출현이 주는 감회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애가 손자것이라는 말을 듣고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그 이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제 삼 남매는 물론 여러 교우들의 아이들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경험이 있었던 저로서는 손자의 이름만은 꼭 제가 지어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손자를 위하여 일찌감치 지어놓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의 이름을 제가 지어 주고 싶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아들에게 손자의 이름은 할아버지인 제가 짓겠다고 먼저 말하기가 좀 그랬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비가 지어준 순 한글로 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들이 누구보다도 할아버지인 제가 이름을 지을 경우 거의 틀림없이 희귀한 한글 이름을 지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어쩌면 제가 이름 짓는 것을 속으로는 꺼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맙게도 제 큰아들은 당연한 것처럼 제게 손자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속으로 기대했던 대로 정작 아들이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해 왔을 때 저는 선뜻 말해 줄 수 가 없었습니다. 제가 지은 이름을 며느리는 물론 아들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애비의 속을 알리가 없는 아들은 출생신고 기간이 지나게 되었다고 자꾸 재촉하였습니다. 망설이던 저는 먼저 아들 내외에게 "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이름임”을 암시하고 그 대신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권리임을 일깨워 주고 제가 지은 이름을 말했습니다.
제가 손자를 위하여 지어 놓은 이름은 “둘 다(doolda)이었습니다. 강의를 위하여 멀리 사이판에 출장 중인 저에게 또다시 전화로 재촉이 와서 눈 감고 이름을 말햇습니다. “둘 다”란 이름을 받은 아들은 예상했던 대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도대체 그게 어느 나라 말이며 무슨 뜻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뜻을 이야기 해주고 다시 한 번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저의 뜻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둘 다”란 말은 제가 지어낸 말로서 제가 저의 “호“와 같이 여기고 제 ”아이디“로 쓰고 있는 이름일 뿐 아니라 저의 좌우명과 같이 여기는 단어입니다. 요즈음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1년에 두 번씩 있었던 학생이나 청년회 수양회에 거의 다 참석하여 수양회의 개회 설교나 광고 시간에 잊지 않고 줄기차게 강조한 말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자” 와 “다음 사람을 생각하자”였습니다. “둘 다”란 바로 다른 사람과 다음 사람의 “ 다”을 합한 혹은 줄인 말입니다. “둘 다”에 포함된 또 다른 뜻은 “너와 나 둘 다” “너희와 우리 둘 다”입니다. 너와 나를 가르고, 너희와 우리를 가르지 말고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므로 “둘 다”를 위하자는 요즈음으로 말하면 승//승 혹은 win//win의 사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말하자면 나만의 신조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지만 저의 젊은 시절에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갈등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고향인 이북에서는 살아 보지 못하고 영남인 마산에서 7년 그리고 호남인 광주에서 5년을 살았던 저에게는 두 지역과 그 지역의 사람들이 고향이었고 고향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지역갈등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영남과 호남의 지역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신학교에 입학한 후였습니다. 학생회 회장을 뽑는데 두 지역 선배들이 따로 모이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또한 그러한 편 가르기가 목사님들의 모임에도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5.16 이후 벌어진 영호남 갈등과 소위 “양 김씨”를 두고 생긴 호영남 갈등이 우리 교회 안에도 말없이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 죄송스러웠고 믿지 않는 분들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수양회에 가서 공동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다음 사람을 배려할 줄을 모르고 오늘 이곳의 자기만을 생각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둘 다를 생각하자”는 말을 계속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것이 나의 좌우명과 인생철학이 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의 후손들 대대에 저의 인생철학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첫 손자 이름은 “둘 다” 그리고 둘째 손자는 “둘 이”라고 지어 주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결과를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하여 결국은 제 아들이 감당하지 못하여 제가 지은 이름은 가정에서 부르기로 하고 다른 한자 이름을 제 애비가 지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또한 얼마 전에 며느리가 할아버지가 지은 이름대로 할 것을 괜히 한자로 한 것 같다고 말하여 적잖은 위로를 받았음도 알려 드립니다. “둘다주의”는 성경에 기초한 것이고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 모두가 범사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매사에 다음 사람을 생각하는 삶을 실천한다면 오늘의 우리는 물론 우리의 다음 세대인 후손들도 행복해 지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공감하신다면 우리 교회와 각 목장에서 “둘다정신”을 구현하기를 바랍니다.
은퇴한 뒤에는 저의 둘다주의 혹은 둘다사상을 널리 퍼트리는 일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기도하여 주시고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하늘과 땅의 복 많이 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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