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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기타 이야기2003-10-28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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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천씨는 68년생 서른 여섯살의 사법 연수생이다.
열흘쯤 전에 검은 양복을 말끔히 입고 그가 학원으로 왔었다.
용건은 열흘안에 가요 한곡을 치게 해달라는 내용인데
원장 선생님과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열흘 후에 있을 프로포즈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날 선택한 곡이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이었는데
그는 C코드 한번 잡아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첫날엔 "그토록 바라던"  처음 한 소절을 옆에서 두시간이나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런 열정 때문에 사람이 참 순수하게 보였고 열흘 후 그의 연인이 느낄 가슴벅참이 느껴졌다.
이틀 후 드디어 모든 초보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코드가 나왔다.
바로 F 코드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된것이다. 그때 그의 표정은.....
나도 처음 기타를 배울때 F 때문에 얼마나 고통 스러웠던가.
C에서 F로 운지 바꾸는 연습을 위해 사생결단의 각오로 연습하다가 왼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나 보름 정도 기타를 잡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렇게 매일 밤 학원에서 11시 30분까지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
자신에게 맞는 키를 찾아 오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그는 밤 12시가 넘어 노래방가서
키를 바꿔가며 사랑의 서약을 30분동안 불렀고 다음날 선생님과의 대화는
"키 찾아 봤어요?"
"B짜 두개 달린게 맞는거 같은데요..."
"비 플랫이요?"
"글세....비가 두개 있었어요"
그는 그렇게 모르면 모르는대로 열심이었고 D-day의 작전도 치밀했다.
평범한 음치인 그의 작전은 노래 중간부터 연수생 동료들이 같이 합창해 주는 것이었다.

D-2
반주 솜씨는 어설프기만 했다.
그래도 그는 자신 만만했다. "노래만이라도 열심히 불러야죠 뭐"
그의 키에 맞춰 선생님이 줄의 음을 조율해 주었고 학원에서 여학생용으로 쓰는
현장길이 635mm 그라나다 기타를 선생님이 기꺼이 빌려 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 기타가 학원에 돌아와 있었다.

반주를 매끄럽게 하지 못하고 중간중간 틀렸지만 그의 연인은 감동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내가 열흘전에 느낀 가슴벅참을 그의 연인이 드디어 느꼈다.


그와 서먹하게 인사 몇번 나눈게 전부이지만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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