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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자작시 비슷한 거 한편 올립니다.2004-04-1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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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서는 별 형편없는 글이지만 제가 시골학교 클래식기타동아리를 지도하면서
아이들이 만들어낸 정기연주회가 끝나고 저의 속내를 털어놔 본 겁니다
그냥 웃음거리로 봐주시길.....




연주회를 마친 아이들에게


                      임 병 준

너희를 무대위에 올려 놓은 그 시각
나는 그 떨림에 숨이 멎을 듯 조바심에 자리를 찾지 못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한시간 십분을 보냈단다.
한곡 한곡이 끝나고 이어질 때마다
너희들의 손끝에서 느낀 그 긴장과 두려움이 나의 심장에 와 박히는 듯한
끝없는 어두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괴로움이 박수가 되어 터질때면
나는 너희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파르르 떨려오는 너희들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보면서
나는 그 옛날의 무대를 떠올렸단다. 내가 연주자가 되어 무대에 오르던 그때를...
그래, 너희들은 아주 큰 승리를 이루어 내었다. 그때의 내가 그렇게 몸부림쳤듯이
너희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 모든 것을 일구어 내었다.
우리가 보냈던 수많은 시간과 흥분과 애증과 반성들이 거름이 되어
이 찬란한 아쉬움과 이 황홀한 후회를 상으로 받아내고야 말았구나.
장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
너희는 진정 내 사랑하는 자식들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잉태의 고통을 너희는 너희들의 손과 손에 맺힌 이슬로 이겨내고야 말았다.
이제 아무것도 억울하지가 않구나.
너희들을 여기에 세우기 위해 지새웠던 수많은 밤들도
포스터와 인쇄물을 만들기 위해 몇번이고 넘어갔다 오던 충주도
없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밤늦게 연습하는 너희들 사다 주었던 딱딱한 빵조각도
이곳 저곳 눈치 보며 고까운 시선들을 다 받아 넘기고, 너희들을 애써 이해시키던 울분도
연습할 시간에 없어진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밤새워 고민하던 그 수많은 나날들도
이제 아무것도 아까울 것이 없구나 선생님은
너희들이 태워 준 그 행가레가 진정 너희가 느낀 나의 정성이었다면
그것으로 나는 나의 상을 다 받았구나.
무대는 야박하고도 매서운 곳
그 살떨리는 전장의 보이지 않는 포화 속에서
너희는 끝내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땀과 노력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모두들 앞에서 여섯줄의 시위를 당겨 보여주고야 말았구나.
그리고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 되어 모두의 가슴 속에 꽂히고야 말았다.
이제 너희는 나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깨달았을 것이다.
연주가 끝나고 손에 가득 거머쥔 꽃다발들 속에서
승리자의 전리품들은 빛이 났고 그 손들은 자랑스러웠다.
그 무엇보다도 큰 전리품은 바로 너희들의 입가에 맺혀진 황홀한 아쉬움
그것이 바로 인생이란다.
수없는 실수와 틀림 속에서
그 속의 나를 찾아 가는 고난과 역경
너희는 이제 그 장천길의 여정 속에 한 발자욱을 마침내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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