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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갈리나(걸리버)여행기2007-07-1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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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있었던 Galina Vale선생의 연주를 몇일간 따라 다니며 있었던 이야기를
더이상 시간이 지나 잊혀지기 전에 몇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지금생각하면 통역을 구하는 것부터해서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돌아보면
매우 흥미로운 드라마적인 일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둘째날 부산에 가는 길부터 동행하게 되었는데 김선생님의 자동차 안에서 Vale선생과
많은 기타에 대한 이야기, 연주에 대한 이야기 등등의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매우 친근하고 훤칠한키, 북구 특유 미인들의 금발 머리와 러시아 사람들의
호탕함이 있는 매우 인상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Vale선생이 연주회장에 가서 여러가지를 의논하는 중에 매우 고전적인
보통 한국인인 우리가 생각하기에 황당한 요구도 했는데,
조명을 삼원색으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순간 김선생님을 포함한 우리모두는 황당함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의견이 관철되어 모든이의 우려를 뒤로하고 빨강색이 강조된 조명아래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워낙 정렬적인 연주와 드라마틱한 연주 무대방식과 어울어져 도리어 우려가 반전되어
청중에게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진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행여나 같은 요구를 서울에서도 할까봐 무척 걱정했는데 Vale선생이 예술의 전당 연주회장을 둘러보고 먼저 아무요구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탈리언 스타일의 마스크를 쓴다던지, 장난기 어린 무대매너, 각 연주곡의 제목을
강한 러시아 억양이 섞인 영어로 말하는 다소 친절한 배려는 여전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의문으로 생각하시는 Vale선생의 독특한 무대 매너에 대한 질문을
저도 하게되었는데 그답인즉, Vale선생의 첫번째 러시아 로컬 선생님은 매우 엄격했는데
우리가 보통상상하는 그런 매우 고전적인 스타일의 연주를 하길 원하셨다고 합니다.
한 예로, Vale선생은 8세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선생의 스승님께서 여자는 다리를 모으는 자세로 연주해야 하므로 의자를 모서리로 앉게 해서 지금도 의자를 그렇게 앉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음악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최적화하기 위해 지금의 자신의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타에 대한 의견도 궁금해 하실것같아 잠시 언급하면, 자신의 연주스타일이 매우 강렬하고
빠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기타중에 김선생님의 기타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각음의 분리성, 음의 원달성, 조율의 정확성, 왼손의 편리성을 매우 높게 평가했습니다. 서울의 연주가 끝나고 저에게 왼손이 너무 아프다고 하면서 만약 자신의 다른 기타로 연주했다면 왼손이 견디질 못했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모르긴해도 클래식기타를 플라맹고식으로 연주하는게 만만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한편, 원달성에 대해 살펴보면, 저도 처음에는 원달성에 대해 잘 믿기지 않았는데
서울 연주가 끝나고 다음날 공방에 가서 연주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전날 서울의 연주회 앵콜곡으로 연주한 도입부를 왼손으로만 치는 곡을 김선생님의 사모님의 요청으로 듣게 되었는데,
전날에는 뒤에서도 각음과 터치가 너무도 크고 정확하게 들려서 이런 소리는
Vale선생만 만들수 있는 소리인가 보다 했는데, 공방에서 같은소리를 들어보니
저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연주자라면 평소에 낼수 있는 그런 소리의 양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곡도 빠르고 다소 큰 소리였지만 일반 기타에서 나는 그런 정도의 음량이었습니다. 아마 이미 공방에서 기타를 소유하신 분들은 공방에서의 기타소리와 다른 장소에서의  소리의 변화를 경험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여하튼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한가지 더 재미있었던 것은 '라 폴리아'를 연주했던 것인데, 김선생님과 의논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기타를 한번 보이자고 하여 어렵게 '라 폴리아'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무대뒤에서 jade선생님의 승낙하에 한번 쳐보더니 마음에 들었던지 뜬금없이 연주를 하겠다는 겁니다. 그 것도 3곡을 하겠다고 하며 나갔는데 2곡만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라 폴리아'의 지판에 있는 점이 자신의 것과 다르게 찍혀있어서
다른 대곡을 치기 어려워 두곡만 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점은 너무도 조심하는 바람에 충분한 격타를 하지 못해, 그 기타의 생각하는 장점을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나중에 자신의 기타와 같이 명확한 음은 유지하며 음량은 훨씬 크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Vale선생의 기타는 하도 열심히 치고 격렬하게 쳐서 이미 상당히 음이 터져 있었고 '라 폴리아'는 아직 갈길이 멀었는데도 그렇게 이야기 하니 앞으로의 '라 폴리아'의 음의 발전에 많은 관심이 갑니다.
여기서 다시 참고로 Vale선생의 기타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나무재료의 선택에 있어서 어렵게 김선생님의 비밀을 살짝 전하면, Vale선생의 기타는 워낙 터치가 강해서 거기에 맞게 재료가 선택되었고, 강한 터치에 맞게 setting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욕심껏 그런재료로 해달라도 했더니 김선생님 왈 '그렇게 맞추면
소리가 않날 겁니다'고 한마디로 면박을주셔서 집에와서 손에 힘을 기르려고 마구치고 있는데 현재의 기타(호* 라미**)가 마구 엉망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서울의 연주는 안타깝게도 부산에 비해 훨씬 정숙했던 반면에 긴장도 되었던지
초반에 다소의 실수가 있었던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간휴식 이후에는 원래의 감도를 회복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다소의 위로를 했는데 기분 좋으라고 당신을 공주라고 했더니,
"자신은 그런 말을 들어도 많은 감동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들어왔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서 모두가 함께 신나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은 "무대에서는 그런 사람이지만 삶은 매우 보통으로 살고 있다"고 하여
연주에 집중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생소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김선생님의 노고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속의 내용을 살펴보니, 비용으로 치면 처음부터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고
친분으로 연주자를 초청하는 식이지만 잘해도 겨우 면박이나 면하는 실정이니
참으로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당분간은 이런 초청연주를 계속하신다니 향후에 이런 일이 있으면 뜻있는 분들이 좀더 많이 도와서 서로의 짐을 덜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마지막으로, 음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던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갖었다는 것을 큰 추억으로 삼겠고, 특히, 함께 고생했던 정**학생, 박**학생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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